무무당의 계종야록(鷄宗野錄) <<24>>

종말은 다가 왔다

편집팀 | 기사입력 2022/05/14 [08:03]

무무당의 계종야록(鷄宗野錄) <<24>>

종말은 다가 왔다

편집팀 | 입력 : 2022/05/14 [08:03]

.........스물 네 번 째 이야기

  

▲ 뉴스콕DB     ©

 

옥에 든 무실은 곧바로 독공(獨功)에 들어 밥도 잘 먹고 옥졸들에게는 파스와 과자를 청하는 도술을 부려 입방아에 올랐으며 왕내시 경사였던 범은 역시 모린다술을 부리며 모든 공을 왕에게 돌리는 모범을 보였다. 모린다술 역시 바다를 건너온 신술(新術)이기는 해도 입을 목안으로 담가 버리는 함술(緘術)에 비하면 한참 아래 무사들이나 펼치는 초식이다. 범은 궁에 들기 전 성균관의 학사였는데 그 부지런함이 궁에 들어서도 변함이 없어 쉬는 시간에도 여염의 상납 챙기기에 최선을 다하는 열성으로 왕의 눈에 가까이 들어 오직 그만이 왕이 쏘아대는 광선의 사각아래 있어 온존했다.

 

왕이 도승지와 영의정을 갈아치운 동짓달 초사흗날 술시(戌時)가 되자 은인자중 신출귀몰로 암행하던 시우술사(是愚術士)가 인왕을 훑어 내린 싸락눈구름을 타고 드디어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장탄을 토했다 "ㅆㅂㄴ이다". 무림의 검자들은 술사의 이 일갈(一喝)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는데, 한 무리는 술사가 도성으로 직접 올라가 궁궐을 겨눌 것이라 보았으며, 다른 한 무리는 우국충정에 끓어오르는 신음에 다름 아니며 결코 함부로 신공을 부리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어떻거나 그가 스스로 움직일 것을 결심 한 것이다. 와중에도 술사(術士)는 여취(女取)에 골몰 새로운 도술 개발을 도외시 하지 않았는데 이는 술사의 균형 깊은 내공(內空)이었다.

 

술사와 재사(才士) 공명상수(孔明上手)는 공중부양(空中浮揚) 상태에서 주작(酒酌)을 나누던 무림의 상고수(上高手)들 이었다. 일찍이 소년 술사 시우(是愚)는 신공(神功) 삽신술(揷身術)을 완성 무림에 혁신풍(革新風)을 불어 넣어 강호를 일신(日新) 무림의 전설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동짓달 초순. 나라가 여왕이 연일 부어대는 기름으로 쩔쩔 끓어 불길이 잦아들지를 앉자 왕은 또 다시 여의섬으로 나가 개김술을 펼치며 공을 던져 버리고 왔다. 선왕 서종(鼠宗)처럼 배째라술수와 모린다도술을 함께 펼쳐버린 것이다.

  

이렇게 왕이 두 번이나 퉁을 쳐 보았으나 이미 야전(野戰)에서 풍찬노숙 닳고 닳은 야()무림은 패를 돌리지 않고 마이를 까라고 했다. 앵꼬가 다 된 상대의 밑천을 눈치 챘는데 패를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으며, 이는 또 강호에 널리 오래된 무림의 내림 이었다.

 

왕은 당황해 기왕에 뜯어 놓은 삥들을 기억해 보았으나 삥바리들이 이미 하옥돼 있는 터라 우선 먼저 패부터 돌려 판을 살려보자며 눈물까지 비치는 사술(邪術)까지 부려 보았으나 이 또한 허사였으며 어벙이들만 굳세어라 금순아를 마른 눈물로 엎드려 훌쩍거렸으나 어느 방울 하나 흘러 바닥을 적시지 못했다.

 

홀로 궁에 유리된 왕은 밤마다 그 쪽팔림에 분개 주공술(主攻術)인 광술(光術)로 레이저를 쏘아 주위를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전날 모반에 성공한 태평양 건너 아미리의 트럼프만 왼쪽 입술을 올리며 딸딸거리고 있었다. 계종 사년 동짓달 초순이 지나고 있었다. 초열흘 이었다.

 

 

--25회에서 계속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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