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소감

최영미 / 이미출판사 <다시 오지 않는 것들> 34면

편집팀 | 기사입력 2022/06/28 [06:35]

등단소감

최영미 / 이미출판사 <다시 오지 않는 것들> 34면

편집팀 | 입력 : 2022/06/28 [06:35]

등단 소감

 

                               / 최영미

 

내가 정말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멀쩡한 종이를 더렵혀야 하는

내가 정말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신문 월평월평 스크랩하며

비평가 한마디에 죽고 사는

내가 정말 썩을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아무것도 안 해도 뭔가 하는 중인

건달 면허증을 땄단 말인가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

 

* 이 시는 등단 직후인 1993년에 민족문학작가회의(현재 한국작가회의의 전신) 회보에 기고한 '등단 소감'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시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시집에 넣지 못하다가, 2000년에 에세이집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사회평론, 초판본)를 출간하며 출처를 밝히고 원문을 수록했다.

 

ㅡ 이미출판사 <다시 오지 않는 것들> 34면

 

나 역시 (비평가)평론가들을 시인이나 문학가들에 기생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며 옳게 보지 않지만 어쩌랴? 그러나 그들을 욕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그들의 입초시에 오르내릴까 연구하는 사람들이 시인이요 문학가 아닌가? 비평가 탓할 건 없다고 본다. 그냥 그들의 직업일 뿐이다. 

 

또한 최영미 시인의 고은 시인에 대한 미투 역시 일차적인 책임은 고은 시인에게 있지만 최영미 시인도 사태가 그렇게 되기까지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문단 내의 보이지 않는 권력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안다. 어쨌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다.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

 

“쯧쯧”

 

2022년 6월 28일. 아침에 시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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