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연의 "그림에 썰을 그리다"

제35화 매월당의 시 한 수

편집팀 | 기사입력 2023/08/03 [06:18]

조상연의 "그림에 썰을 그리다"

제35화 매월당의 시 한 수

편집팀 | 입력 : 2023/08/03 [06:18]

매월당 시 한 수

 

▲ 가산 김부식 70*200 한지에 먹. 梅月堂 詩     ©

 

오늘은 가산 김부식 선생께서 정갈하게 쓴 매월당 시 한 수 감상한다. 매월당의 매력은 삶과 사상 그리고 문학을 일치시켰다는 데에 있다. 고려대학교 심경호 교수는 매월당 아니면 다른 공부를 했을 거라며 매월당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萬壑千峰外, 孤雲獨鳥還. 此年居是寺, 來歲向何山.

風息松窓靜, 香銷禪室閑. 此生吾已斷, 棲迹水雲間.

 

만학천봉 밖에서 외로운

구름 사이로 한 마리 새 날아오고,

올해는 이 절에서 보냈거늘

내년엔 어디로 가야 할까?

 

바람 잦으니 창밖 소나무 고요하고,

향이 사그라지니 선방도 한가하구나.

이번 생의 욕망은 이미 끊었으니,

살아온 흔적일랑 수운간에 남겠구나.

 

의미전달뿐만 아니라 예술성을 포함하는 글씨가 서예다. 서예의 붓글씨 속에는 어떤 사물에 대한 시각의 확장성과 다양성을 제시하며 감정의 굴곡이 들어가 있다. 글씨뿐이랴. 우리의 전통 한지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 할아버지가 글씨 쓰는 걸 많이는 못 보았지만, 집에서 한지를 만들어 쓰곤 했다.

 

개울가 한쪽에서 닥나무를 삶고 한쪽에서는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손톱 밑이 새까매지도록 닥나무 껍질을 벗기곤 했다. 내 기억으로 품삯은 나중에 한지로 받아갔는데 질 좋은 한지는 지방이나 축문으로 덜 좋은 한지는 문에 바르는 창호지로 사용했다.

 

채반으로 한지를 뜰 때 할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집안에 글씨 쓰는 사람도 없고 장에 내다 팔 것도 아니면서 한지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한지의 포근함과 문에 한지를 바르고 말라가는 과정에서 팽팽해지는 모습을 보며 한지는 살아 숨을 쉬는구나 싶었다.

 

60년대 초, 발로 총구에 달려 있는 발판을 누르고 찌걱찌걱 공기를 압축시켜 발사시키는 산탄총이 두 자루나 있었다. 어쩌다가 아재가 사랑채에 사는 군인 아재와 총을 메고 나가면 족제비와 여우를 잡아 올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은 마을에 잔치가 열리고는 했다. 당연히 11사단 포대장님도 잔칫상 한자리 차지했다. 가죽은 흠집 안 나게 벗겨서 면에 있는 아무개에게 갖다 주었다. 면으로 간 족제비와 여우가죽은 반년 후에 할머니가 사용할 겨울 목도리와 붓 몇 자루로 변해서 왔다.

 

붓과 함께 먹이 몇 자루 오기도 했다는데, 할아버지가 쓴 글이 시인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다만 동네 제사가 있으면 축문과 지방 그리고 상여 나갈 때 만장은 도맡아 쓰신 거로 알고 있다.

 

ㅡ 매월당 梅月堂

  

▲     ©

  

 

  • 도배방지 이미지

삶이 있는 문학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