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무당의 계종야록(鷄宗野錄) <<25>>

그 때도 무녀(巫女)가 있었다

편집팀 | 기사입력 2022/05/15 [12:07]

무무당의 계종야록(鷄宗野錄) <<25>>

그 때도 무녀(巫女)가 있었다

편집팀 | 입력 : 2022/05/15 [12:07]

.........스무 다섯 번 째 이야기

 

 

▲ 뉴스콕DB     ©

 

/무녀(巫女)

 

무실을 벗겨보니 그녀는 무녀(巫女)이자 왕사(王師)로 밝혀졌다. 무사(巫師). 왕사(王巳). 그는 왕의 스승이었던 것이었으며 커다란 구렁이였던 것이다. 검은 이무기가 왕사가 되어 진즉에 여왕을 칭칭 휘어 감고 똬리를 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왕의 문고리 내시(內侍) 화상의 전화통에 고스란히 담겨있던 소리를 되살려 틀어보니 거기에는 여왕이 무실에게 선생님이라고 간곡히 읊조리며 궁과 조정의 대소사를 나누었던 것이었다.

 

여왕이 무녀의 꼭두각시였음이 사실로 들어난 것이다.

 

저자를 횡행하던 모든 구설들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사헌부의 간찰들마저도 모처럼 궁궐을 향해 크게 침을 뱉어 버렸던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기가 차다는 것이었다. 모든 백성들이 이 두 여인을 쌍녀(雙女)라 일치에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온 나라의 백성들이 놀라 자빠져 한동안 일어날 줄을 몰랐고 더러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는 자도 있었지만 놀라지 않은 술사(術士) 몇이 있었는데 거춘과 소년검자 우가 그들이었다.

 

쌍녀의 귀기서린 변신술이 소설(小雪)을 잡아당긴 계종4년 병신년 동짓달 스무하룻날, 전일 열 아흔 날 밤에도 열렸던 백성횃불걷기가 달포 내내 계속되며 온 나라 온 백성들이 이제, 여왕께서는 복잡한 정사에서 벗어나 제발 그저 편히 쉬실 것을 엎드려 재촉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왕은 끝까지 개길 것을 승정원에 밀지로 내렸고 대변승지 연국이 이를 백성들에게 나와 전했다.

 

백성들은 민심의 충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귀머거리 여왕에게 ㅁㅊㄴ이라며 내놓고 그를 크게 비웃었으며 특검(特檢)을 빗질하던 여염의 평범한 여인까지 나서 염병하네라고 짓이겨 버렸다. 병신년이 더디 가고 있었다.

 

한편, 수리산으로 들어갔던 화평시째의 하산 소식이 경인간 일대에 퍼지고 그가 칼집에 오른손을 댔다는 것이 알려지자 강호 무림의 검객들이 오직 한 곳으로 시째의 오른손을 주시했다.

 

 

--26회에서 계속이어집니다...

다음 회로 무무당의 계종야록(鷄宗野錄)이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 회까지  많은 구독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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